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말’을 이야기한다. 기후 재난, 생태 위기, 인공지능의 급부상 등은 인간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게 만든다. 종말이 다가왔다며 오히려 더욱더 흥청망청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멸종만이 지구를 위한 길이라는 입장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한 답이 없다. 프란체스카 페란도의 책 《미로에서 출구 찾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해, 복잡하게 얽힌 세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단히 새로운 지식보다는 다르게 사유하고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페란도에게 포스트휴머니즘은 하나의 이론을 넘어,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행동의 철학이다. 그에 따르면 예컨대 포스트휴머니즘 학회에서 논비건 식사만을 제공하는 것은 언행일치에 실패한 사례다. 앎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순간을 경계하는 그의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를 넘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간 스스로 초래한 위기의 시대에 인간됨에 염증을 느끼는 수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일 잠재력이 충만한 책이다.

